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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염과의 전쟁 그리고 바이러스, 세균과의 전쟁
    의학정보/의학역사 2020. 3. 17.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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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는 세균을 발견한 코흐와 멸균과 백신을 개발한 파스퇴르는 19세기 의학역사에서 빠질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 코흐와 파스퇴르는 미생물학자로 업적은 의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뛰어난 과학자들의 놀라운 발견은 모든 희생을 감수할 만큼 연구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의학의 역사에서 위대한 의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의학기술이 생겨났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감염과의 전쟁 시작

    1864년 헝가리의 산부인과의사 제멀바이스는 많은 산모가 산욕열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었으며, 

    같은 동네에 있는 브라하트 박사의 산부인과병동에서는 산욕열 환자가 3% 이하인 것을 보고 이를 추적조사를 시작했다.

    두 병동의 유일한 차이라면 브라하타 박사의 병동에는 조산사가 업무를 담당한다는 것.

    보통 인턴은 시신이 들어오면 맨손으로 부검을 시작했었으며, 조산사는 부검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인턴들은 본인들의 손이 깨끗하다며 손을 왜 씻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때 당시에는 코흐가 세균의 존재를 밝히기도 전이였기 때문에 제멀바이어스는 의문이 사라지질 않았었다.

    그러나 제멀바이스의 동료인 해부학자 콜레츠카 덕분에 원인을 알게되었다. 콜레츠카가 부검하다 매스에 베었는데

    다음날 그는 사망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제멀바이스는 세숫대야에 소독약을 준비하여 모두들 손을 씻으라고

    했었으며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른 박사들은 그와 생각이 달랐다.

    다른 박사들은 본인들의 손을 소독하는 행위를 의사의 품위가 떨어지고 본인들을 웃음거리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결국 제멀바이스는 박사들과의 의견 충돌로 병원에서 쫓겨났고 헝가리의 어느 한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1924년 루이 데투수라 라는 젊은 의대생이 제멀바이스의 업적을 재평가하여 박사 논문을 작성했다.




    세균학의 혁명 시작, 파스퇴르와 코흐

    파스퇴르의 역사 

    작은 생물이 특정 상황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은 1859년에도 계속 유효했으며, 파스퇴르만은 그 

    이론을 반대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실험을 통해 자연발생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해보였다.

    그때 사용한 것이 바로 미생물학에서 유명한 백조목 플라스크이다.

    백조목 플라스크는 특이한 형태의 플라스크로 구부러진 목에 수증기가 외부 공기의 미생물을 차단하고 멸균된 배지는

    무균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이때 백조목 부위를 잘라내면 공기 중의 미생물이 침투해 배양액이 부패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스퇴르의 실험덕분에 저온 살균과 무균법이 개발되게 되었다. 그러나 파스퇴르의 무균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존재

    했고 또 다른 한편 그의 무균법 덕분에 수술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보통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60%에서 15%로 감소하게 된 것이다. 이는 외과의학에서 혁신이 된다.


    로베르트 코흐

    한편 베를린에서는 로베르트 코흐가 세균 배양을 시작했다 그는 특정 세균을 분리하고 염색해서 관찰하는 것 뿐아니라

    병원균을 조작해서 건강한 사람에게 접종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코흐는 세균학의 창시자가 되는 것이다.

    이때 당시 로베르트 코흐는 페트리 라는 조수가 있었는데 그 조수에게 배양접시를 찾아오라하고 하는 등의 심부름을

    시키게 되었다. 그 이후 배양접시는 페트리접시 라고도 불리게 된다.

    코흐는 세균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힐 가설을 만들어 냈었고 그 이후에도 막대 모양으로 생긴 많은 병원균을 밝히게

    된다. 이때 바로 결핵균이 분리되어 발견된 것이다.

    파스퇴르는 병원균을 발견하지는 못하지만 백신의 아버지로 불리게 될 운명이었다.

    이후 닭 콜레라 발병에 연구하던 파스퇴르의 조수 샤를 샹베를랑은 닭에 세균 접종하는 걸 까먹었고 놀랍게도

    접종 후 병든 닭들은 곧 별다른 조치 없이 생생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샹베를랑은 파스퇴르에게 모든걸 다 알려주었고 그 결과 파스퇴르는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이후 실험을 통해 놀라운 결과를 알아내게 된다. 파스퇴르는 균을 이용하여 새로 접종한 닭은 모두 죽었지만,

    샹베를랑이 한번 접종한 적 있던 닭들은 모두 살아남은 것이다.

    그때 생각하게 된다 약한 병원균 주사로 닭이 콜레라균에 내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그 발견은 에드워드 제너의 연구결과와 비슷하다는 걸 알고 파스퇴르 또한 이 발견을 백신이라고 명명하게 된다.


    이상 이번 미생물의 역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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